부부의 아이는 건강해 보였습니다.
건강하게 태어났고, 아무 탈 없이 자랐습니다.
하지만 5살이 될 때까지 도통 말이
트이지 않았습니다.

걱정으로 검사를 받아본 부부에게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건강해 보이던 부부의 아이는
자폐증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이가 자폐증과 함께 지적장애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부는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부는 온 힘을 다해 아이를 교육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장애인 학교에 보내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창의성과 인지능력을 위한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
아이에게 필요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자신의 아이와 한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부부는 언어치료에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 성인이 되었습니다.
다른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고,
장애인 작업장에서의 단순노동이었지만
직업도 생겨 훌륭히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부부에게는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성장하여 자립까지 할 수 있는 아들이 끝내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느 날 이들이 일하는 장애인 작업장에
새로 부임한 책임자가, 부부의
아들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이 청년은 더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책임자는 청년에게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쳤습니다.
비장애인에 비하면 몇 년이나 더 오랜 시간
기다리고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책임자는
청년의 부모를 작업장으로 불렀습니다.
청년은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천천히
자판을 눌렀습니다.

컴퓨터 화면에 한 글자 한 글자가 떠오릅니다.
청년의 한 문장은 완성하기까지 힘겹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정확하게
화면에 다 쳤습니다.

'이제 어머니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청년은 언제나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것을 알리고 싶었지만,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부족하고 다른 친구들보다 떨어지더라도
자녀의 가능성을 끝까지 찾아 주고,
오랫동안 믿고 지켜봐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가능성을 찾아 힘쓰고 노력해도
아이에게 보답을 받기보다는
그냥 묵묵히 기다려 줄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 오늘의 명언
If you think it, you can do it
생각한다면, 할 수 있다.
– 디온 워윅 –

출처 : 따뜻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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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아르메니아에서 발생한 강도 7의 강진.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며
무려 5만 5000명이 참사를 당한 대지진이 일어났다.
도시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이때, 무너진 9층 아파트.
그 잔해더미에는 '스잔나'라는 엄마와 네 살 난 딸 '가이아니'가
철근과 콘크리트 틈새 속에 갇혀 있었다.

스잔나와 가이아니는 오랜 시간 동안 갇혀 있었는데,
가이아니는 엄마에게 숨이 끊어질 듯 작은 목소리로
한 가지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목말라 엄마..목말라 엄마..목말라 엄마.."

물은커녕 움직일 수도 없었던 엄마였지만,
목마르다는 딸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그때,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조난 당한 사람들이
피를 나눠 마시던 장면이 떠올랐다.

엄마는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손을 더듬어 발견한 깨진 유리조각으로 손을 찢었다.
그리고는 흐르는 피를 딸의 입술에 계속 적셔주었다.
그렇게 2주가 흘렀고, 스잔나와 가이아니는 무사히 구출됐다.

=============================================

세상 모든 엄마들은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얇게 입어도 춥지 않으며,
잠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습니다.

엄마니까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가 그렇다고 하니까요.

그런데요. 막상 자식이 엄마가 돼보면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얇게 입으면 춥고,
잠을 못 자면 너무 힘들더랍니다.

그런데, 엄마처럼 하게 되더랍니다.
그게 엄마더랍니다.


# 오늘의 명언
자녀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행복을 느낀다.
자기 자식이 좋아하는 모습은 어머니의 기쁨이기도 하다.
- 플라톤 -

출처 : 따뜻한 하루

폐암 선고를 받은 아내는 수술을 받았지만 치료에 실패했고,
이내 온몸에 암세포가 퍼졌다.
암은 시신경까지 전이되었다.
진통제가 없으면 잠조차 편히 자지 못했고,
순하기 짝이 없던 사람이 차마 듣기 힘든 모진 소리를 했다.
나를 좀 보내달라고. 삶의 끈을 놓고 싶다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제야 내 잘못을 알았는데, 이제야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는데...
언제나 후회는 뒤늦게 찾아온다.

왜 예전엔 아내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그동안 나는 집안일 한 번 도와준 적 없는 이기적인 남편이었다.
못나게도 전처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핑계로
고마운 아내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다.

아프고 나서야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매일 아침 아내가 일어나면 입을 맞춘다.
머리를 빗겨주고, 소파에 앉아 TV를 볼 때도 꼭 손을 잡는다.
소중한 것이 곁에 있을 때 알지 못하고
그것이 떠나려 할 때 비로소 붙잡는 어리석음.

중매로 만난 아내는 돌아서서 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축 처진 어깨가 가슴 아파서 나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내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고,
새엄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상처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서러웠던 만큼
당시 10개월이던 전처 소생 재국이도 상처 없이 자라길 바랐다.
그리고 아내는 누구보다 그렇게 해주었다.
그 덕에 아내와 함께한 세월 동안 나와 아이들은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아내의 고생은 컸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기 몸 한번 돌보는 법 없이
가족만을 위해 살았다.

아내가 아프고 4번째 가을이 찾아왔다.
요즘 외출할 때 나와 아내는 손을 꼭 잡고 다닌다.
금슬 좋은 부부처럼 보일까?
사실 우리에겐 절박한 이유가 있다.
암이 뼈까지 전이되어 이제 넘어지면 그대로 뼈가 부러질 만큼 약해졌다.
갈비뼈, 허리, 대퇴부까지 암이 퍼져 있었다.
요추는 모두가 암 덩어리 자체였다.
더 이상 할 치료도 없다.
아내를 등에 업고 다시 집으로 갈 밖에.
등에 업은 아내가 너무 가벼워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먹기만 하면 토하던 아내는 이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아내를 놓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내는 이제 내 손을 잡고 있기 힘들어 한다.
견디기 힘든 극심한 고통에 아내는 자꾸 무너진다.
그래도 아내가 집에 있으면 방에만 누워있어도 사람 사는 집 같다.

아내가 통장과 보험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글씨를 쓸 기운이 없는 아내의 말을 받아 쓰고 정리하는
사소한 일에서조차 재국이와 나는 감정이 상하기 일쑤다.
나는 재국이의 일처리가 못 미덥고,
재국이는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잔소리하는 내가 못마땅하다.
나와 재국이가 부딪치면 아내는 화를 낸다.
마음 놓고 갈 수 있겠냐고.
아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안 떠날 수만 있다면 좋겠다.

아내가 정리해준 빽빽한 리스트를 받고 보니
늘 사소하게 생각했던 아내의 일들이 뭐 이리 복잡하고 많은지.
새삼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지금껏 아내는 큰 품으로 나를 감싸주고 있었다.

오늘은 아내의 마흔아홉 번째 생일.
건강할 땐 날짜조차 잊고 무심하게 지나쳐 버렸던
아내의 생일이 이렇게 소중한 날이 되다니.
아침 일찍 생일상을 차려 한 숟갈씩 조심스럽게 떠먹여 줬다.
주는 대로 잘 먹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아내의 친구들을 초대했다.
사람을 좋아하던 아내는 친구가 많았다.
한걸음에 달려온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곧 말을 잇지 못했다.
침대 옆에 앉아 이리저리 말을 붙이다가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눈물을 흘리는 친구도 있다.
모든 친구들은 생일상이 다 식도록 수저를 들지 못했다.

"고맙다."
주위가 조용해진 틈에 아내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뭘 고맙노. 우리가 항상 너 생일도 제대로 못 챙겨줬는데.
우리가 미안치. 내년에 또 하자.
내년엔 더 크게 하자."

침대 곁으로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의 촛불을 불었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아내의 친구들이 한 명씩 아내에게 인사를 했다.

"잘 가라. 울기는 왜 우노."
오히려 아내가 친구들을 위로한다.
"밥 잘 먹고 간다. 정신 차리고 있어, 또 올게."
친구들은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아내도 친구들도 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냥 또 만나자 인사를 나눈다.

6월 5일 아침 10시 25분,
아내는 왔던 곳으로 조용히 돌아갔다.
"잘 가라. 저 멀리 잘 가라.
거기서 아프지 말고, 잘 살고.
나중에 거기서 만나자."

=============================================

결혼 22주년 기념일.
나는 아직 홀로 이 자리를 지킨다.
재국이는 벌써 서른이 되었다.

아내, 김경자를 사랑했다.
더 일찍 알지 못했지만 사랑했기에 결혼했고,
사랑했기에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했다.
아내가 떠난 빈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메꿔지지 않는 허전함이 남는다.
그리고 못 해준 것들이 남아 후회가 된다.

그러나 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은
후회나 자책보다는 느껴지는 빈자리의 크기만큼의 사랑일 것이다.
사랑한다면 늦은 때란 없다.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여전히 사랑, 사랑이다.

- MBC 휴먼다큐 사랑 10년의 기적 '지금, 사랑' 중에서 -

출처 : 따뜻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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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볼 때마다 설레는 예쁜 아내.
6년 전 5월, 경복궁에서 우연히 한국에 여행 온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후광이 비친다는 게 뭔지 그때 비로소 알았다.
운명이란 그런 건지 아내 역시 별로 잘생기지도 않은 나를 보고
딱 들은 생각이 '귀엽다, 보조개'였다고 한다.

아내가 태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난 열렬하게 구애했다.
우리는 주저 없이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쳤다.
4개 국어를 하는 아내는 호주 유학을 앞둔
태국에서도 엘리트 집안의 막내였고,
더욱이 우리 부모님은 동남아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으셨다.

중학교 때부터 신문배달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던 나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카지노딜러로 일하고 있었다.
가진 건 없지만 건강했고, 사랑했기에 두려움도 없었다.
나란 놈을 만나 사랑 하나 믿고 덜컥 한국에 온 아내는
나를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게 해주는 여자였다.
그리고 바로 수현이가 우리에게 왔다.
수현이의 탄생은 힘겹기만 하던 내 인생의 축복이었다.
이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다.

작년 봄 수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믿지 않았다.
양가에 누구도 암환자가 없었다.
아내는 자기가 뭔가 잘못한 탓인 것 같다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독한 투약을 위해 손바닥만 한 아이 가슴에 주사 구멍을 뚫으면서도
요즘은 의술이 발달했으니 금세 고칠 것이라고,
항암치료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믿었다.

그런데 수현이는 백혈병 중에서도 굉장히 희귀한 암이라
꼭 이식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당연히 일치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80~90%는 일치자를 찾는다고 했다.
불안해하는 아내에게도 걱정하지 말라고,
이식만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그런데 없었다.
관련 있는 모든 단체에 연락해 봤지만
국내 기증자 26만 명 중 수현이와
유전자 유형이 맞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내는 혹시 태국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태국 전역을 뒤졌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현이는 독한 항암치료를 7차까지 받아야 했다.
열이 펄펄 끓다 못해 40도는 우습게 올라갔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구토를 하며
배가 아파 우는 어린 아들을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온 세상을 뒤져서라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전 세계 2,600만 명이 넘는 기증자 중에서도
수현이와 맞는 사람은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거짓말 같았다.
한 명은 있을 거 같은데, 한 명 정도는 있을 것 같았는데...
수현이가 아픈 게 모두 엄마의 잘못이라고
아내는 자꾸 자기 탓을 한다.
그렇게 밝던 아내가 말수도 줄고 어떤 슬픔도 속으로만 삭인다.

작년 가을, 기적처럼 중국에서 3명의 기증자를 찾았지만
허무하게도 2명은 거절했고,
1명은 정밀검사 결과 불일치 판정을 받았다.
정말 피눈물이 나왔다.
세상이 다 미웠다.

힘없이 웅크린 채 누워 있는 수현이를 보면
아내와 내가 서로 사랑하면 안 되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수현이에게 이런 아픔이 없었을 텐데.
사랑한다는 이유로 앞길이 창창한 아내를 붙잡는 게 아니었다.
내 사랑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아빠 추워."
또 다시 수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수현이의 몸을 부지런히 닦으며 덜덜 떠는 아이를 달랬다.
"수현아 힘내야 돼, 알았지?"
"응."
"우리 수현이,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좀만 더 힘내자, 응?"
"응."
"손 잡아줄게, 수현아. 아빠가... 손 잡아줄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전단지를 만들어 길거리에서 나눠 주었다.
"부탁합니다. 한 번만 읽어 봐주세요."
각종 단체, 교회, 군부대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전화를 하고 또 찾아갔다.

수현이의 얼굴이 들어간 전단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보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전단지가 보이면 모두 주웠다.
구겨진 부분을 반듯하게 펴며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세상에 고마운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도 알았다.
휴직을 한 내 딱한 사연을 알게 된 200여 명의 회사 동료들이
조혈모세포 기증에 나서 주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수현이에게 맞는 기증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아내와 아이 앞에서는 강한 척을 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나도 너무 불안하다.
온갖 생각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래도 강해져야 한다.
흔들리면 안 된다.
나는 아빠니까.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수현이를 위해 나도 머리를 밀었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가는 아빠를 보며
신이 난 수현이가 까르르 웃었다.

우리는 반일치이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치자가 아닌 반일치자의 조혈모 세포를 이식하는 것으로
위험 부담이 큰 수술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이 각각 50%의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아내는 자신이 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이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수혈을 하듯이 엄마의 조혈모 세포를 천천히 수현이에게 넣어주었다.

수술 후 2주 정도까지 수현이의 몸 상태는 괜찮았다.
하지만 안심하던 찰라 거부반응은 갑자기 왔다.
빨갛게 피부 이상이 나타나더니 갑자기 온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숙주병이라 불리는 이식 부작용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피부 숙주반응이 온 것이다.
노련한 의료진조차 당황했다.
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반일치 이식한 환자들 가운데서도
보기 힘들만큼 심한 거부반응이라고 했다.

온몸이 울긋불긋 물집이 잡힌 수현이가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렇게 순한 아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고통을 주는 걸까.

지금까지 잘 참던 수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너무 아프다고 호소했다.
보드랍던 피부가 심한 발진으로 보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지켜주겠다고 했는데, 부모가 돼서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니.
가슴이 무너졌다.
그리고 퇴원은 무기한 연기됐다.

봄이 왔다.
나는 여전히 수현이 곁에 24시간 붙어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나중에 아빠랑 목욕탕 같이 가자."
"응."
"수현이 최고."
"응!"

수현이는 마침내 숙주병을 이겨내고 회복세로 돌아섰다.
피부에는 아직 흉터가 남아 있었지만
10년이 지나면 다 없어질 것들이다.
장한 내 아들, 수현이.
아내는 매일 부지런히 반찬을 만들어 병원으로 싸가지고 온다.
아내를 보면 나는 괜히 아침도 못 먹었다고 엄살을 피운다.

"맛있다!"
"짜지 않아?"
"응, 조금 짜."
웃음이 나온다.
괜히 음식 투정하며 사랑하는 아들 곁에 있는
이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아내는 예전의 해맑은 웃음을 되찾았다.
함께 빡빡 밀었던 내 머리는 제법 자랐다.

"수현아, 엄마는 아빠 거."
엄마를 덥석 끌어안는 아빠를 보며 수현이가 까르르 웃는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지 석 달.
오늘 우리 세 식구는 퇴원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용감하게 달려와 준 고마운 수현이.
설령 수현이에게 아직 갈 길이 남았다 해도 우리는 두렵지 않다.
우리의 사랑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사랑은 아낌없이 내 걸 내주고 다시 한 번 더 주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다.

- MBC 휴먼다큐 사랑 10년의 기적 '지금, 사랑' 중에서 -

 

출처 : 따뜻한 하루

"남들이 우리와 다르게 살아가고 행동하며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기뻐하는 것이 사랑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What else is love but understanding and rejoicing in the fact that another person lives, acts, and experiences otherwise than we do?

- by 프레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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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의해 행해지는 것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

What is done out of love always takes place beyond good and evil.

- by 프레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

"너희들이 나만큼 인생에 대해 알게 되면 강박적인 사랑의 힘을 과소평가하진 않을 게다."

When you have seen as much of life as I have, you will not underestimate the power of obsessive love.

-by J. R. R. 톨킨J. R. R. Tolkien-

"사랑에 의해 행해지는 것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

What is done out of love always takes place beyond good and evil.

-by 프레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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